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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접 닭을 키워보니...
    귀농귀촌 2021. 5. 7.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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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접 닭을 키워보니...
    정작 '닭대가리'는 인간이 아닐까?

     
    07.07.19 12:06 ㅣ최종 업데이트 07.07.19 12:06  이완구 (toy2) 
     
    닭, 유정란, 계란, 폐계닭
     
    근무하는 시골 학교의 울타리 너머에 용도상 밭으로 된 땅이 조금 있습니다. 실제로는 밭농사를 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마치 숲으로 가는 통로처럼 풀이 우거져 보이는 곳입니다.

    얼마 전까지 지역에서 환경단체일을 도와주시던 동료교사 한 분이 닭을 키워본 경험담을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그 땅에 닭을 키워볼 생각을 했습니다.

    우거져있던 나무 밑의 풀들을 낫으로 제거하고 적당하게 심어져 있는 나무들을 이용해 철물점에서 구입한 망을 둘러쳐 그럴듯한 닭장을 완성했습니다. 주변의 조언에 따라 바닥을 삽으로 조금 퍼내고 그곳에 망의 끝을 적당히 묻었습니다.

    아는 분의 도움을 받아 각목으로 문을 만들고, 문틀도 어설픈 용접실력으로 그럴듯하게 만들어 놨습니다. 닭장 안에 밤에 잠잘 수 있는 조그만 닭장을 다시 만들고, 그 위로 비가 떨어지지 않도록 용도가 다한 차량 후드패널 2개를 올려놓았더니 훌륭한 자원 재활용 닭장이 완성되었습니다. 

    ▲ 풀들로 우거진 나무사이의 옛날 밭에 닭장을 만들었습니다. 


     
    ⓒ 이완구
     
    이제 키울 닭만 구매해 오면 되는데, 쉽게 생각했던 닭 구하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았습니다. 병아리를 구해 키우자니 알을 얻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릴 듯싶고, 정상적으로 성장한 닭은 너무 고가였기 때문에 재정상 구입하기 힘들고, 모 유기농 업체에 계란을 납품하는 닭 중 폐계닭(계란을 많이 생산하지 않아 상품성이 떨어지는 닭을 그리 부르더군요)을 구하려 했으나 반출 시기가 되지 않아 제공이 곤란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닭장은 모두 만들어 놓았는데, 닭을 구하지 못해 계획이 모두 수포로 돌아갈 판이었습니다.

    이곳저곳 여러 업체와 전화 통화를 하던 중 저의 실망하는 목소리를 듣던 한 사장님께서 폐계닭 약 25마리 정도는 구할 수 있을 거란 말에 40분을 차로 달려가 마리당 1천원씩, 폐계닭 암컷 25마리와 건강한 수컷 3마리를 구해왔습니다.

    건강상태가 그리 좋은 놈들도 아닌데다, 무더운 여름날 쌀자루에 담아 승용차에 실어 옮긴 탓에 이동 도중 5마리가 비명횡사해, 닭을 키우기 전에 상부터 치르는 묘한 상황도 나왔습니다. 

     

    ▲ 계란을 많이 생산하지 않아 상품성이 떨어지는 폐계닭. 흉할정도로 털이 벗겨졌으나 곧 회복한다 ⓒ 이완구


    닭장에 풀어놓은 닭들은 폐계닭이라는 말에 걸맞게 한눈에 봐도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곳곳에 털이 빠져버리고 닭 벼슬은 축 쳐져 있었습니다. "털은 금방 다시 날 것이고, 알도 잘 낳을 것"이라고 하는 업체 사장님 말에 희망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직접 먹을 계란을 얻어낼 목적으로, 성장촉진제등이 포함되어 있을만한 사료 등은 무조건 배제하고 학교식당이나 집에서 매일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를 먹이기로 했습니다. 학교는 물론 집에서도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으니 그걸 먹은 닭들이 낳은 계란은 '유전자 조작없는 방목닭의 유기농 유정란' 정도로 봐도 무관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폐계닭이 낳은 계란. ⓒ 이완구

    닭장에 닭을 풀어놓은 다음날부터 바로 대박이 났습니다. 닭들이 7개의 계란을 선물하더군요. 정말 신기했습니다. 어느 날은 한번에 14개의 계란을 낳은 적도 있습니다.

    식성도 좋아서 식당에서 가져다주는 남은 음식물들은 물론, 주변의 풀을 베어주어도 금세 다 먹어치우고 사람 인기척만 나도 무서워 피하기는커녕 사람 주위로 먹이를 찾아 몰려들었습니다.

     

    ▲ 식성이 대단한 닭들   ⓒ 이완구

    그런 기쁨도 잠시였습니다.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아침 일찍 닭장을 찾아 계란을 수거하려 하는데 계란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냥 발길을 돌려 돌아와 고민에 빠졌습니다.

    환경이 바뀐 탓일까? 뱀이 들어와서 먹어치웠나? 아님 다른 동물이 그랬을까? 그도 저도 아니면 사람일까?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계란은 없었기에 의혹은 더 커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범인을 알아냈습니다.

    점심에 잔반을 주고 고민하며 닭들을 쳐다보고 있는데, 닭 한마리가 매번 알을 낳던 장소에 앉아 있다가 알을 낳자마자 다른 닭들 몇 마리가 달려들어 순식간에 계란을 먹어 치우는 것이었습니다. 그 무리 중에는 직접 그 계란을 낳은 닭도 있었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곧바로 닭을 구입한 사장님께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닭이 알을 낳을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주되, 사람을 비롯해 외부에서 안 보이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부랴부랴 못쓰게 된 고무통 한쪽에 입구를 내고 닭장 안에 풀들을 베어 바닥을 깔아주니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부터 그 안에서 다시 계란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무 일 없듯이 다시 계란을 낳는 닭들을 보면서, 무엇인가를 얻는다는 것에만 골몰하여 정작 그들에게는 생명처럼 소중한 것들조차 조금도 배려하지 않는 인간의 이기심이 부끄러웠습니다.  

    ▲ 노려보던 닭의 모습이 이유가 있었던 듯 싶습니다.   ⓒ 이완구

    정작 '닭대가리'는 인간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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